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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김규면 (金圭冕) 선생을 선정
기사입력: 2018/01/30 [15:06] ㅣ 최종편집: 나눔뉴스.
최정호 기자
[나눔뉴스=최정호기자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규면 (金圭冕, 1880. 3. 12.~1969. 2. 2.) 선생을 2018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선생은 시대의 전환기인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했다. 1904년 일본은 강제로 체결한 한일의정서에 근거하여 육군무관학교를 통제했다.

무관이 되어 조국 부강을 염원했던 선생의 꿈은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1907년 훈춘(琿春)으로 망명한 선생은 민족종교 단체인 대한성리교(大韓聖理敎)를 만들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포교규칙(布敎規則)을 공포하자, 이에 반발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스스로 무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청년들을 독립전사로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1914년 이동휘와 함께 중국에서 설립한 동림무관학교를 들 수 있다.

 
독립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달성하려는 선생의 노력은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결성으로 이어졌다.

     
3·1운동에 호응하여 결성된 대한신민단에서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기서 보여준 그의 헌신은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1924년 윤자영과 함께 상해에서 조직한 상해청년동맹(上海靑年同盟)을 통해서 중국 학생계와 연대를 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습을 당하여 부상을 입게 되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 활동 전개에 한계를 절감한 선생은 연해주로 갔다. 1933년 빨찌산위원회에서 항일운동을 하였지만,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의 탄압대상이 되었다.

     
모스크바로 피신한 후 더 이상의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가 없었다. 선생은 러시아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을 하지 못한 채 1969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김규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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