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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식물·동물·사람의 생로병사 동반된 3차원세계가 인간계
생로병사 있는 현생·이승·금생·저승의 참모습과 운발(運發)
기사입력: 2020/07/31 [09:01] ㅣ 최종편집: 나눔뉴스.
노병한 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사주산책] 비판철학을 통해 서양 근대철학을 논리적으로 종합했던 칸트(Kant, Immanuel)는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은 스스로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끈질기고 집요하게 의문을 던지는 행위라고 했다. 예컨대 칸트(Kant)의 의문은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 질문인 ()의 존재영혼(靈魂)의 존재에 관한 질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 영혼의 존재 여부는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없기에 칸트의 비판철학에 따르면 신()과 영혼의 문제는 학문의 주제나 지식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칸트 그의 업적은 앎의 영역인 학문과 지식에서는 신()과 영혼의 문제를 추방했지만, 삶의 희망과 행복의 영역에서는 신()과 영혼을 부활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에게 신()은 선()한 삶을 위해 요청되는 신()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살아생전 지상생활의 참된 목적은 뭘까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승은 번뇌화택(煩惱火宅)이다. 뭐든 서로 차지하려는 탐욕과 아귀다툼의 천국일 뿐이다.

 

인간이 이승(今生)에 태어나 짧게는 60년 내외로 길게는 100년 내외의 인생을 지구상=인간계에서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정작 이런 지상생활의 참된 목적이 뭣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모르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의 존재는 육신(肉身)이 살아서 이승(今生)의 지상에 있을 때에는 육체 속에 가두어져 있는 정신 상태이기에 봉제인형을 입고서 기우뚱 기우뚱 걷는 것처럼 매우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비유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자유롭게 하늘의 4차원세계=천상계(天上界)에서 그대로 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왜? 어떤 이유로 괴로()운 모체(母體)=육체에 깃들어 들어와서 태어나()고 늙어()가며 병()들고 죽음()이라는 과정의 온갖 괴로()움과 통증(痛症)의 고통을 맛보고 겪으면서 인간계=지상계에 내려와서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진정 자유스러운 4차원세계=천상계(天上界)인 영계(靈界)=영천상계(靈天上界)를 떠나와 육체를 가지게 된 인간령(人間靈)은 자유를 상실하는 대신에 다양한 동물적인 감각과 욕망을 몸에 지니게 됨으로써 육체수행의 과정에 진입하게 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이 창조한 세계의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장소인 인간계(人間界)=지상계(地上界)3차원에 만들어졌음인데, 이런 3차원세계에 바로 광물·식물·동물·사람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존재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3차원세계=인간계(人間界)=지상계(地上界)=현상계(現象界)가 한마디로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이승이고 금생(今生)이자 현계(顯界)의 참모습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동반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승(今生)이자 금생(今生)의 참모습인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전생(前生)에 짓고 쌓은 업보(業報)와 죄장(罪障)의 결과물에 따라 부귀영화와 무병장수 그리고 빈곤질병은 물론 다양한 장애를 달리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주(四柱)원국의 구성이 전생(前生)의 업보에 따라서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로 구분되고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왜 이리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는가? 나는 왜 이리 하는 일마다 꼬이고 엉키는 것일까?

 

이는 자신이 태어나면서 타고난 선천적인 사주(四柱)원국에 전생의 업보와 그 결과물이 그대로 반영된 사주(四柱)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이 만들어 놓고 지어놓은 농사처럼 결실을 맺어놓는 수확물처럼 말이다. 누구를 탓하랴?

 

그런데 똑같은 연월일시의 사주(四柱)를 타고났어도 살아가는 팔자인 삶의 모습이 전혀 딴판인 이유는 뭘까? 이는 태어난 생일사주는 동일해도 어머니의 태반에 생명이 잉태된 시점인 태시(胎時 )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목표하는 일에의 접근이 쉽지 않아 보이는 사람의 경우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주팔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음이니,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개운(開運)을 하는 수단과 방법을 터득하거나 배워서 강구함이 필요하다는 증거인 셈이다.

 

결국 개운(開運)법을 잘 아는 주변의 역학(易學)전문가를 찾아 자신이 타고난 선천적인 사주팔자의 모순(矛盾)을 찾아서 제거하고 결함(缺陷)을 보완하는 방책을 받아서 해결함이 운발(運發)을 좋게 하고 높이는 가장 중요한 길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미래문제·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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